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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아내가 치과를 다니거나 산후 마사지 등의 일정으로 외출을 했다. 그렇기에 아내가 돌아올 때까지는 온전히 딸과의 시간을 보내야했다.
이리 안아주고 저리 안아주고 딸랑이와 동요로 놀아주고 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지치게 된다.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고 딸은 인생이 처음이다 보니 서로 서툴러 사이가 틀어지는 때가 종종 있었다(이건 그냥 나 혼자만의 생각일 뿐이다.). 육아에 대해 잘 모르니 딸에게 어떻게 대해주어도 울음바다가 된다던가. 그 울음을 그치게 하기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걸 다 해보았는데도 짜증을 부린다던가. 그럴 때 마다 나는 나 자신과 딸에게 짜증의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그래도 아빠란 존재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안아주고 먹여주고 진땀 나지만 달래주려고 애쓰는 게 전부였다.
딸 아이를 안고 한참을 있다보면 품안에서 잠이 들랑 말랑 하는 때가 있다. 이 때 한숨 돌리며 슬쩍 바닥에 내려놓으려고 하면 어떻게 알았는지 기똥차게 울어준다. '아이구 알았어 알았어'라고 말하곤 다시 안아서 재우는 것 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나마도 다행인 것은 수유시트를 허리에 끼고 그 위에 놓고 재우면 잠들어주곤 했다.
이때부터 나는 얼음 혹은 돌이 되어야 했다. 가만히 멈추어 휴대폰으로 인터넷을 하거나 티비를 보려고 했는데 아기는 미디어 음향에 좀 민감한지 짜증으로 번번히 나를 제압했다. 그 후로는 잠든 아기를 안고 있는 동안 심심함을 달래야 하기에 독서를 해보기로 했다. 출산 전에 구매한 십팔사략을 이 기간 동안에 다 읽었다. 아빠가 독서를 하게 만들어주는 딸이다. 효녀가 따로 없다.(사락 사락 책장 넘기는 소리에도 혹여나 깰까 노심초사했던 순간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렇게 한참을 책을 읽다보면 아내가 귀가한다. 귀가 전에 간식이나 커피를 사간다는 연락을 했는데 작은 것이지만 참 반갑고 힘이 되었다. 독서에 집중한 것인지 딸의 잠을 지켜주기 위함인지 수시간이 지나도 피에타 조각상 처럼 아기를 안고 몇시간을 보낸 나를 아내가 구제해주었다. 그럼 커피도 마실 수 있고 화장실도 갈 수 있었다. 그런데도 희안하게 더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본능인 것인지 뭔가 아쉬움이 있는 것인지 미안해서 인지 모를 이유이지만 더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아내가 왔는대도 슬이가 깰 때까지 안고 있기도 했다.
그때는 생각하면 살이 쪽쪽 빠지던 시절이었지만 다시 올 수 없는(아닌가 둘째 셋째라면...) 순간이니 최선을 다해봤다.
D+57 : 피에타
아빠 엉덩이가 큰 이유가 다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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