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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를 만난 후 축하와 함께 간혹 들은 소리는 '남자아기' 같다는 말이었다. 여자아기였기에 아빠를 닮았다고 하는 말도 살짝 서운하긴했는데 아기에게 장군감이라는 둥, 남자아기 같다는 둥 하는 이야기는 좀 불편했다. 과민하게 받아드리는 것일 수도 있는데 내 아기(여자)다 보니까 예쁘다는 말이 더 듣고 싶은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강요해서 내 새끼 예쁘다고 해줘요 할 수 없으니까. 하긴 나조차도 좀 남자애 같아 보일 때도 있었으니까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긴 했다. 객관적으로 그렇게 보이는 구나 싶어서 그게 맞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속에서 뜨끈하게 올라오는 죄책감 같은 것이 있었다. 태어났을 때 머리숱이 풍부한 것과 이목구비 비율이 좋은 것을 빼면 붉은 피부의 녀석이 남자아기 같다고 나조차도 생각했으니까. 이렇게 생각하는 스스로 죄책감이 들 수 밖에... 그 때 붉은 얼굴을 보고 관운장이라고 했다가 아내한테 혼났다. 단순히 초보 아빠는 처음의 외모만 보고 걱정했다. 아빠를... 나를 닮아서 여자애처럼 예쁘게 자라지 않으면 어쩌지? 라는 것이 그랬다. 하지만 나도 고슴도치 아빠였고 계속계속 보고 있으니 이 보다 예쁜 딸이 없었다. 친구들의 아기를 봐도 주변의 아기를 봐도 내 새끼가 젤 눈에 밟히고 예뻤다. 그러다 보니 육아기록을 낙서로 하고 있는 나는 어떻게든 아기를 극적으로 미화하지 않으면서 그림에서라도 사람들이 남아로 오해하지 않게 하기 위한 장치가 필요했고 그 결과 달라 붙은 것이 '노란 나비'였다. 이렇게 잡은 컨셉이 썩 마음에 들었다. 나비는 그림에서 하나의 장치 같은 것인데 이제는 딸에게 주기로 했다. 너 해라. 아빠는 그게 더 좋다. 처음 붉은 얼굴의 딸을 보고는 장모님께서 빨간 애들이 나중에 하얗게 된다고 했던 말씀대로 지금은 백옥 같은 피부를 하고 있다. 얼굴의 선도 점점 여자처럼 변하는 것 같아서 신기하다. 별 것 아닌 생각일 수도 있었는데 인스타그램 친구의 물음으로 기억을 끄집어 냈다. 이렇게 내가 미처 기록하지 못한 부분에 대한 질문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 딸이 제일 예쁘다.
D+33 : 나비
다 예쁘게 자라니까 걱정하지 않기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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