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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슬이야기

분유포트 세척중엔 보온병을 이용해 주세요

by 중근 2022. 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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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날 치곤 해가 슬쩍 가려져서 나들이겸 어린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산책을 다녀왔다. 집앞 공원에 나가보는 것이 전부였지만 뭔가 콧바람을 쐬는 것 같아서 환기가 됐다. 그렇게 별탈 없이 하루가 간다고 생각했다. 

저녁 수유를 준비하며 아내는 내게 슬이 분유를 타달라고 했고 나는 늘 하던대로 분유포트에서 물을 받았다. 물의 온도는 40도씨를 넘어서 50도씨 정도였고 물이 뜨거우니 좀 식혔다가 분유를 타겠다고 했다. 여기까지 아무 문제 없었다. 늘 비슷하게 일어났던 일이니까. 40도씨 정도로 식힌 분유를 아내에게 건냈고 아내는 슬이에게 수유를 했다. 잠깐 먹던 슬이는 이내 분유를 뱉어내고 말았다. 우웩... 사실 이런 소리도 안났다. 아기들은 그냥 물 틀어놓은 것 처럼 토사물을 뱉어낸다. 그래도 무심하고 강경한 아빠는 저녁 수유를 마저시켰다. 돌아보니 이때 뭠췄어야 했다. 140ml를 다 먹여버렸으니... 그래도 꿋꿋하게 불만없이 부모에 대한 무한 신뢰로 다 받아먹어준 딸에게 다시 미안하고 감사함을 느낀다. 그래서였을까 그냥 지나고 돌아보니 결과론적인 생각이었을까? 아기가 조용했다...

시간이 흘러 아기를 씻기고 재울 준비를 하면서 밤 수유를 하려고 분유물을 타던 중에 아내가 놀라며 말했다. 혹시 분유포트 물 쓰는 거냐며... 난 '이 물 쓰면 안돼?' 되물었고 아내는 세척중이라고 안에 구연산이 들어있다고 말했다. 나는 진땀 나고 불안한 목소리로 나 아까도 이 물로 분유를 탔다고 말했다. 아내는 그래서 슬이가 토한 거 같다며... 속상해 했다. 확인을 제대로 하지 못한 나는 나대로 나를 원망했고 아내는 분유포트 세척중이니 사용하지 말라고 말하지 않은 것을 자책했다.

저녁 7시 쯤 먹은 것이 처음이니 벌써 몇시간이 지났고... 지금이라도 알 게 되어서 다행이라 생각하고 빨리 119에 연락했다. 119에서는 시간이 벌써 많이 지났기 때문에 빨리 응급실로 가보라고 했다.

그렇게 생후 38일만에 응급실에 가게 된 슬이는 코시국이라 혼자서만 의사를 만나러 갔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아내가 들어가서 딸을 데리고 나왔다. 진찰 결과 이미 섭취한 시간이 꽤 흘러서 해줄 것이 딱히 없다. 특별하게 문제 되지는 않을 것이니 앞으로는 특별히 조심해주길 바란다. 아내는 너무 속상하고 무서워 했다.

그래도 의사말이 괜찮을 것이라고 했으니까...

'금식'이라는 결과를 받은 것이 내가 가장 무서웠다. 이 아기가 과연 아침까지 잘 참아줄지가... 물론 잘 참아주었다. 고맙다. 미안하고. 사랑한다.

 

그 이후에 생긴 우리 가족의 규칙은 분유포트 세척 또는 물을 끓일 경우 기기에 아빠의 그림을 올려놓는 것이다.

 

D+38 : 분유포트 세척중엔 보온병을 이용해 주세요

 

구연산분유라니 정말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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