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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아주 오래된 친구네 가족의 방문이 있던 날.
친구 남편의 한 손에는 아들 준우의 손이 다른 한 손에는 곰이 한마리 들려있었다. 이 무슨... 장난감 말이란 말인가. 준우가 타던 리락쿠마 스프링카라는 녀석이었는데 슬이 준다고 가져왔다고 했다. 저 녀석을 타기엔 슬이는 너무 어린 것 같은데... 과연 슬이는 저 녀석을 언제 타게 될 것인가? 라는 의문과 함께 준우가 아직은 저 곰을 더 타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우려했던 것과 달리 친구는 아들과 잘 이야기해서 들고 온 것이라고 했다.
막 잠이든 슬이 때문에 우리는 조용할 수 밖에 없었고 때마침 주문가 식사가 도착해서 조용한 오찬을 즐기게 되었다. 오랜만에 만나서 서로의 근황과 초보 육아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둘째 계획은 있느냐, 애기 물건 때문에 집이 좁아졌다, 이런 음식도 오랜만에 먹는다, 애기는 잘 노느냐 소소한 대화 도중에도 나와 아내는 자꾸 엉덩이가 들썩 거린다. 방에서 혼자 자고 있는 슬이가 신경 쓰여서 그랬던 것 같다. 결국 밥을 다 먹지 못했을 때 슬이의 울음 소리가 들렸고 식사 도중 아내가 먼저 들어가서 슬이를 달랬다.
야금야금 밥을 먹던 내게 친구는 '그만 먹고 들어가서 니가 봐, 애기 엄마는 손님이 와야 쉬는 거야' 라며 깨달음을 전해주었다. 바로 들어가서 슬이를 달래고 수유를 해주었다. 근데 아무래도 아빠 보다는 엄마한테서 더 편안함을 찾는지 곧 엄마가 안아줄 때까지 울었다.
짧은 폭풍이 지나가는 사이 밥상머리에 있어야 할 친구가 없었다.
'준우는?' 이라는 물음에 격정적으로 곰을 타고 있는 준우를 보니 귀여워서 웃음이 날 수 밖에 없었다. 곰과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는지 아쉽지 않을 만큼 열심히 타는 것 같았다.(고맙다...) '이제 동생 줘도 돼?'라는 엄마의 물음에 씩씩하게 그래도 된다는 아이가 너무 대견하고 신기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준우는 엄마 가방에서 동생을 준다며 무언가를 꺼내왔다.
그리고 잠든 슬이 옆으로 가서 수줍게 빨간 소방차를 건네줬다. 직접 받고 고마워 할 수 있는 시기였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도 하면서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는 것도 역시나 좋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준우하고 슬이의 첫 만남은 이렇게 이루어졌고 이 날을 기억하게 하는 이야기가 하나 생겨서 일기에 잘 적어놨다가 이렇게 하나의 기록으로 남길 수 있어서 다행이다.
D+93 : 외간 남자의 선물
어찌 저렇게 마음이 예쁠 수가 있을까?
나는 성악설을 믿는 사람인데...
근데 시간이 꽤나 흐른 지금도 슬이는 곰을 잘 못 탄다. (겁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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