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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장/지하철관음증

K지하철 빌런 도감

by 중근 2022.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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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관음증 X 지하철빌런 시리즈물

나약한 자여 지하철을 탈 자격이 있는가?

 

 

001 비스트 마스터

 

 

조기 축구하는 날인데 녀석들을 봐줄 사람이 없어서 데려가는 것이다. 지하철 플랫폼에서 '이 토끼의 이름은 뭔가?' 라고 묻는 할아버지의 질문에 "이 토끼의 이름은 '샤를로또'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옅은 탄식과 함께 할아버지의 눈에는 아무런 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머리 위의 새가 신경쓰인 것 같았다. 자네 머리 위의 새는 이름이 뭔가? 라고 물었을 때, '새요?' 라고 되묻곤 깜짝 놀라며 나자빠졌다면 컬투쇼 사연진품명품의 한장면 같았을 텐데 라고 생각했다. 

예전에 학교에서 후배가 며칠동안 키웠던 토끼 '샤를로또'가 생각났다. 전선을 갉아먹고 여기저기 똥도 많이 싸던 녀석이었는데 학교잔디밭에 풀어준 뒤로는 볼 수가 없었다. 잘 있니?

 


002 미스터 초밥왕 (메트로 드렁커)

 

고된 일을 마치고 퇴근길, 마침 들어온 수당에 그간 고생한 스스로를 위로하고 싶었다. 그 위로의 순간을 물러가는 회처럼 미루기엔 후회스러울 것 같았다. 바로 지금이야. 아직 찬기가 남은 시원한 소주가 입술을 적셔주고 빠알간 초장에 찍은 싱싱한 회 한 점, 요즘 말로 이게 바로 섹스인가? 여기가 비록 지하철인들 위로의 시간을 방해 받을 수 없다. 이말이야. 소주잔과 젓가락이 더 있었다면 함께 지하철을 타고 가는 승객들, 오늘 하루도 고된 삶을 사느라 고생한 이들과 함께 위로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을텐데. 하는 마음을 쓸어내리며, 오늘도 창동행 열차는 달린다.


003 컵라면 러버

현대인들은 너무 바쁜 삶을 살고 있다. 지금 끼니 조차 앉아서 먹기엔 시간이 없다. 달리는 전철안에 몸을 맡기고 이동하면서 식사를 하며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과연 이 컵라면을 다 먹을 수 있을까? 이동하면서 스스로 만든 미션으로 삶의 작은 도전마저 즐기고 있다. 뉴요커들이 거리에서, 택시에서, 걸으며 먹는 점심시간 샌드위치처럼 이 컵라면이 바쁜 도시 생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오늘도 국물까지 깔끔하게 완컵하고 내릴 수 있길 바란다.


004 단소살인마

유혈 사태를 막기 위해... 친구여 단소를 불어라. 지하철에서는 조용히하고 자리에 앉아야 하는데 세상엔 눈에 거슬리는 것들이 너무 많다. 여기저기 다 신경써줘야하고 질서를 바로 잡지 않으면 어떻게 하는가? 누군가는 해야하는 것 아닌가? 이 일도 용기가 필요한 것이라 술기운을 빌려 오늘도 지하철의 군기반장 역할을 자처한다. 이 곳엔 내 이런 역할을 싫어하고 비웃는 녀석들, 때려야할 녀석들이 많지만 "안때려!!ㅁ" 나는 욕쟁이지만 폭력은 하지 않는 평화주의자니까. 


005 난 너무 예뻐요

과연 얼마나 예쁘게 보일까? 난 너무 예뻐요. 섹시하게 그을린 거무티티한 피부에 상아색 스타킹을 신고 꽃무늬 치마를 두르고 흰색 브라우스를 입고 푸른색 머플러를 두르니 오늘은 빨간 구두까지 신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내 모습이 너무 눈이 부셔 선그라스를 써야겠다. 숏숏컷 헤어가 엣지있고 세련되게 보이게 하는 것 같아서 만족스럽다. 오늘 장기 내기에서는 꼭 승리해서 핸드백에 담배 3보루를 담아와야겠다.


지하철에서 승객들을 관음하며 그림 연습을 가끔하는 취미가 있었다. 코로나 이전이라 마스크를 쓰는 이도 거의 없었고 젊은 멋쟁이 마스크를 쓴 사람 정도가 다였다. 출퇴근하며 낙서하던 시절 지하철 몰카, 도촬 이슈 때문에 남을 보고 그리는 것도 문제가 될까 이 행위가 위축 되었다. 그려도 남자승객 위주로 그리게 되었다. 거기에 코로나로 인해 모두가 마스크를 쓰니 지하철 타는 이들이 나름 뽐내던 개성이 마스크에 가려진 것 같았다.

웃음벨처럼 가끔 보던 지하철 빌런 시리즈를 지하철을 타면서 그려보자 했던 그림과 짧은 스토리텔링을 담아 본 기록물이다. 우리나라 지하철도 그렇게 나약하지 않은 공간이라고 느껴졌다. 다이나믹하고 가끔은 이해할 수 없는 이해하고 싶지 않은 너무 알고 싶은 그래서 물어보고 싶은 사람들을 짤로 마주할 때가 있다. 나약한 자는 탈 수 없는 K지하철, 그들을 관음한다. 

 

실제로 마주한다면 당황해 하지 않고 기자 기록으로 남길 수 있을 것인가? 빌런 제보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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